개념과 포트폴리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가정 양립이란 취업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것으로, 일·가정 양립 조치의 포괄범위는 넓고 또 시대에 따라 변하는 동태적인 개념일 수 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자녀양육의 책임을 갖는 남녀근로자의 일과 가족생활을 지원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노인돌봄 등의 가족책임, 여가 향유를 지원하는 조치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어디까지를 일·가정 양립 지원 조치로 보느냐, 그리고 개별 서비스는 어떤 내용을 담느냐 등은 사회 내 산업·기술수준의 변화, 인구 및 노동력 구성의 변화, 근로관행 및 문화 등에 따라 달라지고 진화를 계속하는 역동적인 과제라 하겠다.

현단계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는 크게 휴가휴직제도, 유연근무제도, 보육서비스로 영역을 나눌 수 있고 각 영역 내 다양한 세부조치들이 존재한다.

기업들은 조직 구성원의 특성과 사업체의 상황에 맞춰 단계별 일·가정 양립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고, 또한 기존의 세 영역 외에 새로운 조치를 만들어 α, β의 상자를 채울 수도 있다.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포트폴리오
제도 측면에서의 발전과 성과 지체

“한국에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거대한 여성인력풀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가 2000년대 들어와 성장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사회적 위험으로 가시화되면서 OECD, 매킨지 등이 국가성장전략의 하나로 ‘여성고용률 제고’를 제안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이를 배경으로 2000년대 중반이후 일·가정 양립제도가 부상하게 되고 지난 10년간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보육, 휴가·휴직제도 및 유연근로 등의 제도 측면에서 현저한 발전이 있었다.

일례로 육아휴직자가 2002년에 3763명이었으나 작년에는 7만 6833명으로 급증했다. 그렇다면 일·가정 양립제도의 출현을 이끈 정책목적은 달성되었는가? 아쉽게도 출산률과 여성고용률 등 거시지표의 개선이 더디어 후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문제는 사각지대 해소 및 장시간 근로의 개선

육아휴직제도 등 대부분의 일·가정 양립제도는 대기업·정규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어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고, 여성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자는 배우자의 질병, 다둥이의 출산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육아휴직을 신청했음에도 조직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고 조직에 대한 헌신도가 낮은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또 개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고 여가 및 가정생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장시간 근로를 빼놓고는 일·가정 양립을 논할 수 없다.

1989년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과 2004년 주40시간제 도입 등에 힘입어 근로시간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최장시간 국가군에 속한다.

장시간 근로체제가 유지되는 데에는 문화적 요인도 작동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면주의(Presenteesim)가 팽배하면 근로자들은 거의 대부분 항시 출석함으로써 사업장내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2014년 1월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직장 동료, 선후배에게 평소 하지 못한 말’을 주제로 남녀 직장인 10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오늘 칼퇴근하겠습니다”가 1위를 차지했다고(30.2%) 한다.

사실 칼퇴근의 국어사전적 표현은 정시퇴근으로 보이는데 칼퇴근이란 용어가 등장한 배경에는 정시퇴근을 좋게 보지 않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일·가정 양립의 가치는 계속 추구될 것

이제 한국사회는 일과 가정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를 양립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는 상태이며 향후에는 더 빠르게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인식 및 문화 개선이다.

예컨대 여성이 가사와 양육의 전담자라는 기존의 인식에 대한 아무런 변화 없이 일·가정 양립조치의 시행은 여성의 역할 가중만 가져온다. 남성부양자모델에서 벗어나 남녀가 공히 일과 가사를 분담하고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현행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일·가정 양립은 요원하고 장시간 노동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과 근로문화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가정 양립은 제도보다는 문화라는 주장이 나온다.[출처=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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