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헌 인제대백병원 교수
지난달 21일 고병원성 H5N8형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되어 죽은 오리 사체가 발견되고, 뒤이어 종계장에서도 닭의 AI 감염이 확인됨으로써 AI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우려로 많은 국민들이 오리고기, 닭고기, 계란 등의 소비를 꺼리면서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AI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을 말하는데, 이 바이러스는 야생 또는 사육 조류에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나 정상적으로는 인체감염은 시키지 않는다.

특히, 최근 국내에 발생한 H5N8형 AI는 과거 외국에서 인체 감염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H5N1형이나 H7N9형과는 달라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킨 사례가 없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오리나 닭 등 조류에 발생했던 AI 유행에서도 인체 감염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AI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AI가 사람에게 어떻게 전파되는 지 알 필요가 있다.

AI의 인체감염은 감염된 조류에 인해 오염된 먼지, 물, 분변 등에 묻어있는 바이러스를 사람이 직접 접촉하여 전파될 수 있다. 그동안 AI의 인체 감염례들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의 국가에서 발생하였는데, 대부분 축사와 주택의 공간적 구분이 명확히 되지 않는 주거환경에서 감염된 조류와 장기간 밀접한 접촉을 한 경우였다.

예를 들면 감염된 조류를 손으로 만지거나, 감염된 조류의 분비물이나 분변을 마른 먼지 형태로 흡입하거나, 감염된 조류를 도살할 때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축사와 거주공간이 거리를 두고 명확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인체 감염 발생국들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국외 AI 감염사례들과 추정 감염경로를 보면, AI는 익힌 음식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AI가 음식을 통해 감염될 확률 자체가 매우 낮은데다가 AI 바이러스는 섭씨 70도 이상의 온도에서 사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류독감이 유행하는 지역에서도 익힌 오리나 닭고기, 그리고 계란 등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의료인의 입장으로 볼 때, 닭고기, 오리고기, 계란 등의 식품들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교적 저렴한 영양공급원이다. 따라서 AI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 이런 건강식 섭취를 회피함으로써 영양 불균형이 초래되고 이 때문에 면역력 저하로 감염병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AI 자체보다 더 큰 국민 건강상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더구나 AI로 인해 닭고기, 오리고기, 계란 소비가 급감하여 이들 식품들의 생산기반이 붕괴할 경우, 우리 국민들은 나중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이들 식품들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식품가격 상승이 소비를 억제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 국민들의 건강에는 분명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밝혀진 감염경로를 고려해볼 때, 조리된 사육 조류를 먹는다고 해서 AI에 감염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조리한 오리고기나 닭고기 등 사육조류와 계란 등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AI의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오리고기, 소고기, 계란 섭취를 피하는 것보다는 손을 자주 씻고, 닭이나 오리 등의 축사 방문을 피하며, 새나 새 분비물을 만지지 않는 등 개인위생의 철저한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출처=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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