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 급식 수저를 어린이용으로 바꾼 대전천동초등학교

지난 8월 l일 국가인권위원회는 17개 시ㆍ도 교육감에게 “학교급식에 관한 계획을 수립 및 시행할 때 아동(저학년)이 사용하기에 알맞은 수저가 제공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언뜻 생각하기에 작은 수저 하나 바꾸는 일은 매우 쉬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복잡하다. 학교마다 다른 급식형태, 식수, 운영 과정을 감안해야 하고, 조리원들의 업무 부담 가중, 기존 업무의 변화 등 수저 변경 결정에 앞서 고려할 요소들이 적지 않다.

고품격 학교급식 전문 잡지「뉴트리엔」이 ‘이색 급식현장’이란 제목으로 저학년 급식 수저를 어린이용으로 바꾼 대전천동초등학교를 찾아 세밀하게 취재했다. ‘급식뉴스’가「뉴트리엔」의 동의를 얻어 옮겨 실었다.[편집자 주].  다음은「뉴트리엔」기사(editor 정영은, photographer 민영주)

배식하는 급식 양, 맵고 짠 정도, 수저나 식판의 크기 등을 학생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대전천동초등학교는 학생 눈높이에 맞춰 저학년의 수저를 어린이용으로 바꿨다. 그 작지만 큰 변화의 효과가 궁금하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급식의 세계

학교급식에서 저학년이 어린이용 수저를 사용하는 대전천동초등학교 학생들이 실감한 변화는 컸다.

1학년 7반 이하은 학생은 “예전에는 수저를 사용할 때 무거워서 불편했는데 이제는 가벼워서 좋아요”라고 말했고, 육현수 학생은 “이가 빠져서 수저를 입에 넣을 때마다 잇몸에 닿는
느낌이 이상하고 아팠는데, 수저를 바꾼 뒤에는 안 그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이 “큰 수저는 밥을 뜰 때마다 너무 많이 떠져서 입에 넣을 때 다 흘렸는데, 작은 수저는 적당히 뜰 수 있어서 흘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진연 영양 선생님은 학생들의 시선에서 급식을 보려고 노력했으나 그 관심이 맛이나 메뉴 위주였다고 털어놓았다.

“평소 급식을 준비하면 맛이나 메뉴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어요. 염도는 적당할까, 맵지 않을까, 골고루 잘 먹을까. 메뉴도 익숙한 메뉴 위주로 짜되 가끔씩 새로운 걸 하나씩 더했고요. 수저는 정말 생각도 못하던 요소였어요.”

그렇다면 대전천동초등학교의 급식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교장 선생님의 포착과 급식실의 협조로 가능

2019년 3월, 대전천동초등학교에 유영언 교장 선생님이 부임했다. 일주일 정도 학교 운영을 관찰하던 교장 선생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바로 학생들의 수저였다.

“저학년 학생은 손과 입이 작잖아요. 아주 조그마한 손으로 큰 수저를 들고 입에 채 넣지도 못하면서 먹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안쓰럽더라고요. 그걸 지켜보면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곧바로 정진연 영양 선생님한테 물었죠. 수저가 너무 큰 거 같은데 혹시 작은 걸로 바꿀 수 있냐고요. 그랬더니 본인도 고민한 다음에 조리하는 분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가운데 작은 사진- 왼쪽이 어린이용 수저. 오른쪽의 성인용 수저와 비교해보면 제법 큰 차이가 난다.
정진연 선생님은 수저를 변경하는 일이 혼자만의 고민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수저 변경이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단체급식 특성을 고려하면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요. 배식할 때 수저통을 보면 수저의 방향이 일정하잖아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고르개’라는 기구를 사용하는데, 통 안에 수저를 넣으면 고르개가 흔들어서 위아래 방향을 맞춰줘요. 근데 그 고르개는 어린이용 사이즈가 없어요. 대전천동초등학교는 식수가 약 1,200명 정도라서 양도 많고 시간이 촉박한데, 세척한 뒤에 일반 수저와 어린이용 수저를 따로 구분하고 정리하려면 엄청난 일이에요. 그러니 조리하는 분들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저도 마냥 고집할 수 없는 문제죠. 다행히 조리하는 분들이 수저를 바꾸는 데 흔쾌히 동의했어요. 물론 순환급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천동초등학교는 식수가 많다 보니 급식을 순환해서 운영하고 있다. 1차로 1~3학년을, 20분 정도 간격을 두고 2차로 4~6학년을 대상으로 급식을 실시하는 것. 일반 수저와 어린이용 수저가 마구 섞이는 상황이라면 수저 변경이 불가능했겠지만, 학년을 나눠서 실시하는 방식이라 수저 변경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저학년 학생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유영언 교장 선생님.
덕분에 저학년 학생들은 식사가 훨씬 수월해졌다.
“수저를 변경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학생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때서야 사실 숟가락이 크고 무거워서 먹기 힘들었다거나, 이갈이 하는 중인데 먹을 때마다 숟가락이 잇몸에 부딪혀서 아팠다고 말하더라고요. 놀랐어요. 신체 발달적 특성이 원인이기 때문에 정말 학생 관점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였죠. 바꾸고 나서야 어린이용 수저가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영양 선생님의 역량에 대한 믿음 덕분에

수저 변경에 대한 찬사가 적지 않지만,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유영언 교장 선생님은 덧붙였다.

“다른 교장 선생님들과 급식에 대해 의논하던 중에 수저를 바꿨다고 하니까 다들 아이디어가 좋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했던 건데 오히려 선생님들이 보도 자료를 내보라고 제안했어요. 이후에 급식 수저를 놓고서 학생 인권에 대한 말까지 나오던데, 사실 그런 거창한 뜻은 없었어요. 그저 학생 입에 맞는 숟가락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뿐이죠. 대전천동초등학교 1~3학년이 500명인데 그 인원의 수저를 변경하는 데 예산으로 100만 원 정도 쓴 거 같아요. 너무 큰돈은 아니니까 관심이 있고 급식실 여건만 맞는다면 학교 예산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죠.”

유선화 교감(왼쪽)과 정진연 영양교사.
이렇게 수저를 변경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영양 선생님의 역량을 믿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유선화 교감 선생님이 전했다.

“정진연 선생님이 워낙 꼼꼼하게 일을 잘 하세요. 적극적이면서 일을 처리하는 게 빠른 편이죠. 새벽 같이 출근해서 일하는 거 보고 정말 놀랐어요. 물론 다른 학교 영양 선생님도 식재료 검수하느라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우리 학교는 식수가 많다 보니 일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급식이 정말 맛있어요. 외부 강사들이 대전 시내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일하는데, 천동초등학교 급식이 정말 맛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교장 선생님이나 저나 영양 선생님을 많이 신뢰하는 편이죠.”

정진연 선생님은 원래 충청남도에서 임용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개인 사정상 대전광역시에서 다시 임용시험을 본 다음 2018년부터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독특한 케이스다.

“확실히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초등학교로 오니까 환경이 많이 달라요. 처음에 왔을 때는 넘치는 의욕으로 고등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특식을 넣었어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요. 근데 초등학생은 경험해본 음식이 많지 않으니까 오히려 특식 같은 식단을 낯설 게 보고 아예 안 먹더라고요. 집에서 먹는 음식을 더 선호하고요. 처음으로 식단에 제한이 있다는 걸 느꼈죠. 고등학생의 입에는 별로 맵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초등학생은 매워하고요. 평범하면서도 맛있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너무 새로운 것이 없으면 교육 급식의 의미가 없으니까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적절히 균형을 맞추고 있죠.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경험을 통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자의 마인드와 아이들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어요. 학생들이 가볍고 편한 수저로 식사를 하니 학기 초인데도 급식에 대한 인상이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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