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웰빙 문화와 함께 각종 식재료와 다양하게 섞여 무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얗기만 했던 식빵이 검은색, 빨간색, 초록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식빵은 더 이상 그냥 식빵이 아니다.

누군가 묻는다. 하얗고 네모난 빵이 무엇이냐고. 고민 없이 대답한다. “식빵.” 어느 제과점을 가도 한편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식빵은 변함없는 외형으로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왔다. 본래 밥 문화인 우리나라에선 요기를 채울 수 있는 대표 간식으로 꼽힌다. 제과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 덕에 빵 애호가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효자 품목이기도 하다.

식빵을 구매할 때 당연하다는 듯 딸기잼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때에 따라 포도잼이나 버터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잼과 버터가 식빵의 짝꿍이던 순간이 있었다. 촉촉하고 새하얀 식빵 위, 바삭하게 구워낸 갈색 식빵 위에 올려 먹는 달콤함과 고소함은 여느 간식이 흉내 내기 어려운 비장의 맛이다. 때문에 식빵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어떤 것과 조합해도 튀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게 말이다.

한국산업규격에서도 식빵을 ‘밀가루를 주원료로 기타 필요한 첨가물을 더한 반죽을 발효시킨 후 구워서 만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빵·과자 백과사전>은 식빵에 대해 토스트, 샌드위치 등으로 만들어 일상적으로 식용하는 빵이라고 설명한다. 식빵이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나라마다 다르나 우리나라에서는 틀에 넣어 구운 흰 빵이라고 한다는 것. 꼭대기를 자연스럽게 부풀려 산봉우리처럼 만든 오픈톱(영국형)과 뚜껑을 엎어 평평하게 구운 풀먼 타입(미국형)으로 구분 지었다.

닭가슴살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식빵

그랬던 식빵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웰빙 문화와 함께 등장한 잡곡식빵과 통밀식빵은 물론 초콜릿, 팥, 치즈, 제철 과일 등 각종 식재료와 섞여 무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얗기만 했던 식빵이 검은색, 빨간색, 초록색을 띠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식빵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띠지 않는다.

▶ 메이플·치즈·삼색·초코누텔라·플레인·녹차밀크·딸기·녹차팥 식빵의 모습. 64겹의 데니시 식빵 계열로 마치 종이가 쭉쭉 찢어지는 듯한 결이 특징이다.
방부제 등 첨가물 제로, 유통기한 짧은 맛있는 빵

30cm 남짓한 식빵을 반으로 가르니 검지 손톱만 한 밤 알갱이가 가득 차 있다. 서울 양천구 소재 D제과점의 1등 메뉴다운 자태다.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이곳은 빵에 별도의 첨가제를 넣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른 빵들보다 일찍 건조해져 식감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하지만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밤인지 빵인지 헷갈릴 정도로 가득한 밤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식빵 한 덩어리를 금세 해치울 수 있어 건조해질 틈도 없다. 혹 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호두와 크림치즈로 채워진 호두시나몬롤 식빵, 새콤한 블루베리가 박힌 블루베리 식빵을 권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S제과점은 식사 빵에 초점을 맞춘 식빵 플레인(Plain), 네추럴 (Natural), 리치(Rich) 등 세 종류만을 판매한다. 모든 제품에 방부제를 비롯한 합성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짧다. 플레인은 밀가루와 버터, 우유를 최적의 비율로 배합한 가장 기본적인 식사 빵이다. 리치 역시 버터, 달걀, 우유로 밀가루의 고소한 풍미를 최대한 살려낸 빵이다. 여타 식빵과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면 내추럴을 추천한다. 내추럴은 설탕 대신 꿀과 요거트를 넣어 은은한 단맛이 난다. 굽지 않고 그대로 먹거나 토스터기에 살짝 구워냈을 때 본연의 풍미가 극대화된다.

▶ 벨기에산 초코가나슈를 배합해 고급스러운 단맛이 특징인 초코미니식빵이다
초콜릿이 흘러나오는 식빵도 있다. 서울 마포구 소재 S식빵 전문점은 이색 식빵 돌풍을 이끈 곳 중 하나다. 대학가에 위치한 만큼 젊은 세대를 유인할 수 있는 식빵 속 알맹이들이 눈에 띈다. 가장 인기가 많다는 초코식빵은 갓 만들어졌을 때와 굳었을 때 식감이 다른 게 특징이다. 빵이 뜨거울 때 흐르는 생 초콜릿도 매력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 굳은 초콜릿이 두툼하게 씹히는 식감도 나쁘지 않다. 나이테 모양의 팥 앙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내용물이다. 크게 달지 않은 팥이 입맛을 돋우는 데 한몫한다. 흔한 팥빵 맛을 떠올리지 말 것. 우유와 곁들이면 굿이다.

▶ 부드러운 커스터드와 크림치즈로 속을 꽉 채운 큐브 커스타드식빵. 식빵 겉에 올려진 크림에 한 번 놀라고, 식빵 속 진한 달콤함에 두 번 놀란다.
“식빵은 가장 기본이면서도 만들기 가장 어려운 빵”이라고 서울 성동구의 M빵집 제빵사는 말한다. 정사각형 모양의 큐브 식빵은 이곳을 대표한다. 한 손에 폭 들어가는 크기의 큐브 미니식빵도 인기다. 부드럽고 진한 커스터드와 크림치즈로 속이 꽉 찬 큐브커스터드는 나른한 오후 에너지를 채우기에 충분한 달콤함을 전해준다. 식빵을 구매한 뒤 바로 먹지 않는다면 랩이나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할 것을 권한다. 얼린 빵은 속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상온에서 서서히 해동시킨 뒤 달군 팬에 데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밀도 있는 조언도 덧붙인다.

식빵 단면에 세 가지 색이 보인다. 딸기와 녹차를 섞은 분홍 반죽과 녹색 반죽이 일반 식빵 반죽에 더해져 삼색 조화를 이룬다. 비주얼에 시선을 빼앗긴 것도 잠시. 무게감에 한 번 더 놀란다. 64겹의 데니시 식빵 계열로 얇은 결이 밀도 있게 차 있어 여타 식빵과 다른 무게감을 자랑한다. 데니시 식빵은 덴마크 방식으로 제조한 식빵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게 특징이다.

식빵의 결을 살리기 위해 숨을 불어넣는다는 빵집도 있다. 부드러운 빵의 결과 속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 재료들에 빵을 씹는 입이 바쁘게 움직인다. 에멘탈 치즈와 롤 치즈가 섞인 치즈 식빵은 한끼 식사 대용으로 거뜬하다. 겉모습만 보고 다소 작은 크기에 아쉬움을 느낀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식빵 속 3분의 2가 치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출처= 위클리 공감 이근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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