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우리에게 밥 주는 식구 버리지는 않을 것"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경찰공무원의 충원 작업을 진행하면서 '의무경찰' 부대를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한다고 밝힌 가운데 의경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의경 영양사'들은 한순간에 직업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6일 의무경찰영양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의경부대에 소속돼 있는 영양사들은 최초 계약 당시 '의경부대의 통폐합이 있을 경우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기간 중에도 해고될 수 있다'는 계약서 내용 때문에 최근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고 ‘뉴스1’이 보도했다.

2023년 안에 의경의 단계적 폐지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영양사들은 고용주인 경찰청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영양사들은 전국의 부대에 나뉘어 1명씩 근무하고 있고 100여명이 안되는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자신들이 외면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각 부대마다 1명씩만 일을 하고 있는 영양사의 특성상 외부에 불만을 이야기 할 경우 누구인지 쉽게 파악돼 인사상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실제 뉴스1과 대화한 영양사들은 전부 소속이나 신원이 밝혀지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과거 영양사들은 지금과 비슷한 일로 일괄 해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크다. 2013년부터 의경부대의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처음 계약을 할 때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바꿔준다는 말에 월 150만원 정도의 적은 임금에도 참고 일했는데 경찰은 2015년에 최초 고용됐던 50명의 영양사들을 전부 해고하고 신규직원을 선발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영양사 노조의 강한 반발로 재계약이 이뤄졌지만 같은 상황이 됐을 때 경찰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영양사들의 설명이다.

현재 영양사들이 가장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근로계약상에 명시된 해고조항이다. 이들이 작성한 근로계약서상에는 '업무량 변화(부대 통합 해체, 이전)·예산 감축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 할 때' 고용주인 경찰청이 이들을 일방적 의사결정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경 폐지로 인해 경찰청이 이들을 해고한다고 하더라도 영양사들은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계약 자체가 불공정 계약의 여지가 있어 영양사들은 오래 전부터 불만을 가져왔지만 부대가 간혹 통폐합될 수는 있어도 의경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왔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영양사 B씨는 "최근 들어 의경 폐지 논의가 나와서 관리 주체인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용전환 등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권한이 없다고 회피하려는 답변만 들었다"며 "저희는 생계가 달린 문제인데 그렇게 넘어가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B씨는 "최근 영양사 2명을 새로 뽑게 됐는데 담당 업무를 하는 경찰이 '이럴 거면 뽑지 말 걸 그랬네'라고 말했다"라며 "우리를 괜히 뽑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진지한 문제 해결 의지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도 영양사들의 고용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당장 의경부대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단계적으로 의경부대의 폐지가 진행되는 만큼 차차 영양사들에 대한 처우 고용문제도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계약서상에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양사들을 곧바로 해고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식구들에게 밥을 주는 식구인데 그렇게 버릴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편, 영양사 노조는 오는 8일 경찰청에서 담당 경찰들과 간담회를 열고 고용불안과 처우 개선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간담회를 통해 고용 보장을 위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노조는 단체 활동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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