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2ㆍ3식 학교급식 변화 토론회 참관기

“기숙형 고등학교라 3식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시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기분이 든다. 벌써 14년째다.”

경기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영양사(교육공무직)의 질의 첫 마디에 토론회장이 크게 술렁였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영양교사(2ㆍ3식을 운영하는)들은 2~3년 있다가 다른 곳으로 전보되니 희망이라도 있지만 교육공무직(영양사)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퇴직할 때까지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1식을 하는 초등학교로 가고 싶어 발령신청을 해보기도 했지만 동일조건 이동(고등학교 근무 중이면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전보)이란 기준 때문에 포기하고 있다. 그냥 여기서 서서히 골병이 들다가 죽어야 하나? 생각이 들면 억울하고 침울하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 매번 힘내자고 나를 다그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제는 1식 근무강도보다 3배 이상 힘들다는 2ㆍ3식 근무자들에 대한 보수체계가 달라져야 하든지 인사시스템이 반드시 개선돼야 우리 아이들의 안전ㆍ건강ㆍ교육급식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토론회장을 가득 메운 영양교사와 학교 영양사들은 저마다 수근거렸다. 탄식과 동정, 분노, 감탄 등 복잡한 심경들이 어우러진 술렁거림으로 받아들여졌다. 2ㆍ3식 학교에 근무 중인 영양(교)사들의 버거운 현실들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 수근거림은 2ㆍ3식을 해내며 같은 입장에 놓인 영양(교)사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려 14년이나 근무해야만 한 그의 처지를 공감하고 안타까와하고 동정심을 내비친 것이고, 14년이란 긴 세월 동안 버틴 그의 인내심에 감탄을 한 것으로 이해됐다.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허술하고 미흡하고 한심한 이 나라 학교급식 정책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술렁임으로 비쳐졌다.

그 영양사는 추가인력 배치 문제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교육청에 추가인력 배치를 요청하려 했지만 그만뒀다. 50세가 넘는 조리사들은 변함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견뎌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데, (추가인력을 배치받아) 나만 편하게 8시간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란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사립 고등학교에서 3식을 한다는 한 영양사는 내년부터 자율학습을 폐지한다고 해도 3식은 급식비를 부담하는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추가인력을 얻어도 교육급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보조쌤과 일하고 있는데 급식 보조가 아니라 완전 행정보조 역할만 하고 있어 문제다. 급식비 미납자 독촉, 폐식용유ㆍ소모품 계약관리 등 행정실에서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아이들의 더 나은 급식을 위한 추가인력 지원이 아니라 행정실용 보조인력인 셈이다. 급식실과 행정실의 업무분장과 지침이 서둘러 마련돼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제재(사립학교 재단들의 학교운영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 탓)도 곁들여야 한다.”

토론회장에는 '석식 폐지'를 주장하는 3식 근무 영양사들의 피켓도 등장했다.
지난 30일 오후 경기도교육복지지원센터(대강당)에서 열린 ‘행복한 교육공동체 실현을 위한 토론회- 학생ㆍ현장 중심 2ㆍ3식 학교급식,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란 주제의 토론회는 두 학교 영양사의 질의 혹은 현장증언만으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다시한번 노출시켰다. 그들의 한마디한마디에 모든 문제점이 녹아 있었다.

이날 최진 영양교사(샛별중학교)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행 2ㆍ3식 학교급식의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 지적과 함께 △추가인력 배치 △업무경감과 명확한 업무분장 △교육청ㆍ지자체ㆍ국가 등의 급식비 지원 △방과후학교 급식운영 지침 마련 △인사ㆍ성과제도 개선 등 구체적인 개선방안들을 제시했다. 2ㆍ3식 학교 영양(교)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정리해 발표한 내용에 다름 아니다.

문제를 알면 해법이 보인다고 했다. 학교마다 급식 인원과 근무여건 등 입장과 상황은 다르다. 정답은 없지만 개선을 위한 큰 틀은 직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박정미 부산국제고등학교 영양교사가 토론 발표를 통해 국제고의 해법을 제시했다.

박 선생은 부산지역에서 급식만족도가 가장 큰 학교 1~3위는 모두 고등학교이며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 등이 가끔 급식을 먹으러 오는 일도 있다고 전하면서 “영양(교)사가 보조인력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좋은 급식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교육청은 2ㆍ3식 학교급식의 문제점들을 크게 인식하고, 지난 2011년부터 보조인력 배치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 “2ㆍ3식을 운영 중인 영양(교)사들은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식단을 짜느라 고민하고 제일 좋은 식재료, 가장 맛있는 조리법을 고민하며 제일 안전한 급식이 되도록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토론회장에는 경기지역 학교급식을 총괄하는 이연숙 사무관과 이형남 교육급식과장 등이 참석해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겠지만 2ㆍ3식 학교의 개선대책을 서둘러 만들어내는 일은 그들 손에 달렸다.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구희현 경기도급식운동본부상임대표는 이날 나온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이재정 교육감을 만나 전할 것이라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토론자 중 하나로 나선 조승현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의원은 “여야 2기 연정 합의로 크게 얻어낸 경기도청의 내년 학교급식 지원비 1,033억원의 활용방안에서 2ㆍ3식 학교에 대한 추가 인력배치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혀 토론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번 토론회는 경기도영양교사회(회장 김윤실, 상탄초등학교), 경기학교영양사회(박혜성, 가운중학교)가 주최ㆍ주관하고 친환경경기도급식운동본부,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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